영월의 초여름

@yejinmoon_2019. 6.27 영월에 왔다. 내 생의 첫 영월인데, 제대로 구경도 하지 않고 바로 한 달 전에 예약했던 에어비앤비로 향했다. 영월에서 제일 큰 마트인 농협에서 장을 보고, 어머님께 픽업 요청을 드렸다. 전날 밤, 압정에 발이 박히고 썩은 상추 국물이 가방과 내 옷을 다 적셔나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무더운 날씨, 습한 공기.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무거운 짐, 땀으로 젖은 몰골. 나는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일 년에 한 번뿐인 휴가를 내고 이곳에 왔을까. 전화가 왔다. 어머님과 만났다. 연세가 조금 있어 보이셨다. 직장은 부동산을 다니시고, 이 근처에서 일하기 때문에 픽업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귀여운 구름으로 뒤덮인 오늘 하늘은 '몽글몽글'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솜사탕같이 푹신푹신해 보인다고 혼자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머님께서 나에게 먼저 "오늘 하늘 근사하네요."라고 말씀을 꺼내셨다.10분 전, 마트에서 마주한 직원분에게 무례하게 굴던, 어머님과 동년배의 아주머니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에어비앤비는 딸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하고 있고, 어머니의 성함을 따서 이름을 지었으며 어머니를 닮은 캐릭터를 그려 하나의 브랜드처럼 운영하는 듯해 보였다. 원래는 영월과 인연이 아예 없었는데, 강릉에 방문을 했던 그 당일, 우연히 이곳이 근처라 들렸다가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이 너무 좋아서 그냥 눌러 앉게 되었다고 그녀의 3분기(20년이 1분기라는 가정하에) 역사를 내게 들려주셨다. 다양한 주제로, 무엇을 말씀하시던 그녀의 목소리에는 늘 당당함이 느껴져서 그런지 지금 향한 숙소에 대한 기대가 더욱 증폭되었다. 나도 어머님의 저 당당함을, 무엇을 원하던 기대 이상이라고 말씀하시는 저 자신감을 닮고 싶어졌다. 숙소에 도착하니 강아지 2마리가 있었다. 이름은 방울이와 맹자. 둘 다 믹스견으로, 갈색과 흰색이 섞인 방울이는 엄마였고, 덩치가 2배는 더 큰 검정과 흰색이 섞인 맹자는 그녀의 아들이었다. 사방에 아무것도 없는 숙소에서 둘이서 심심했는지 손님들이 올 때마다 저렇게 반겨준다고 했다. 솔직히 5분이면 새로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식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 가겠지 싶었는데, 그건 내 편견이었다. 그 둘은 몇 십분이 지나도 내 숙소 앞에서 내가 나오기까지 기다렸고, 내가 나오자 두 마리 다 내 앞으로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자꾸 뒤로 벌러덩 누워 자신의 배를 내밀었다. 한 3번 만나주면 끝나겠지 싶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4시부터 시작한 애정공세는 밤 10시가 되어서도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했는데도 날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저 행동과 눈빛, 작업을 하다가도 자꾸 신경이 쓰여 미치겠다. 방울이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맹자처럼 나를 끝까지 따라오지는 않았고, 맹자는 너무 좋다고 방방대며 내가 가는 길을 항상 앞질러 따라 나섰다. 마치 오래된 가족인마냥, 나를 너무 잘 따라서 사실 우리는 전생에 가족이 아니었을까 라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다 보니 갑자기 비가 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나는 집 앞에 바로 설치되어 있는 해먹에서 누워있다가, 완전히 어두워지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배고파서 소시지 2개를 구워먹었다. 맛있었다. 주방에 앉아 영상 편집을 했다. 두 시간이 지났다. LP가 끝나서 다른 음악을 틀러 턴테이블 앞으로 갔는데 갑자기 창문 밖으로 어둠 사이에서 어떤 물체가 점프를 하고 있길래 뭐지? 하고 봤더니 맹자가 문을 열어 달라며, 자신의 몸보다 큰 창문을 향해 점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발견하자 그제야 점프를 멈추고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든다. 나는 서둘러 밖을 나가자 맹자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사실 이 곳은 밝을때면 참 평화롭고 좋은데, 밤에는 가로등 하나없는 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혼자 있을때면 조금은 무섭다. LP가 끝날때마다 트랙을 바꾸러 이동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귀찮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혼자 있는 이 밤이 더 무서워질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작업을 중단하고 자리에 일어나 LP를 틀었었는데. 이 곳에 혼자 있다는 무서움이 나의 게으름을 이길 정도였으니. 나의 무서움을 알고 온 건 아니겠지만, 맹자의 등장에 혼자라서 생긴 두려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이런데 어떻게 사랑을 안 줄 수가 있지? 문을 열자마자 맹자는 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순식간에 집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누워 배를 깔고 현관에 서있는 나를 쳐다봤다. 나는 몇 번 쓰다듬어 주다가 다시 작업을 이어나갔다. 작업을 하다가 맹자를 바라봤다. 맹자는 나를 바라본채로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다. 정말 평화로웠다.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치열하게 달려온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던 평화였다. 2019. 6.28 아침 8시부터 눈이 절로 떠졌다. 참 진귀한 일이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밤에는 너무 추워서 오들오들 떨다가 잠에 들었는데,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닫아 놓았던 창문을 황급히 열었다. 열자마자 선선하면서도 습한 공기와 풀 내음이 내 코를 찔렀다. 웬일인지 가벼운 몸을 일으키고 정자세로 앉아 바로 앞에 있는 숲을 바라보았다. 분명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무서웠는데, 날이 밝아서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사그라들어 안도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평화와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아침까지 이어진 귀뚜라미 소리, 이른 아침부터 울리는 매미소리, 아침을 여는 닭의 울음소리.집 바로 옆이 도로라서 24시간 내내 정신 사납게 하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 빵빵대는 경적소리, 오토바이 소리 등 인간이 만들어낸 소리는 이곳에 없었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서울에서 막차를 타고 영월에 온 언니는 큰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언니가 아직 자고 있어서 조용히 씻고 주변 산책을 했다. 일단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갔다. 풀이 우거진 곳 사이에 닭장이 있었는데, 닭 2마리와 오리 3마리가 한곳에 있었다. 소리의 근원지가 이곳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시간을 확인했다. 8시 반이었다. 얼른 집으로 가서 아침을 차려야겠다. 아침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먹던 조식을 모티브해서 만들었다. 소시지 2개와 계란 1개, 키위 1개, 과일 잼, 구운 식빵. 사장님의 감각이 돋보이는 주방에 빛이 들어 오니 나도 언젠간 이런 집에서 살고, 이런 주방에서 매일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내가 아침을 차리고 있을 때 언니는 옆에서 집에서 가져 온 드립백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에티오피아, 언니는 과테몰라. 내 커피는 산미가 너무 강했다.열심히 만든 아침을 들고 집 앞으로 나가서 작은 테이블 위에 세팅했다. 작은 의자 2개, 조금 더 높은 정사각형 원목 테이블, 그리고 그것들을 마주보고 있는 앞에는 해먹이 있었다. 일단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시작하려 하는데 맹자와 방울이가 아침인사를 건네러 온 듯 바쁘게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아뿔싸. 너무 일러! 아직 식사 전이라고! 나는 황급히 우리의 아침을 보호했다. 방울이는 나름 과묵하지만 그녀의 아들, 맹자는 아니었다. 다행히 음식이 놓여있는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온다든지 그런 돌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또다시 우리 앞에서 벌러덩 눕고 애절하게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손에는 빵을, 다른 한 손은 맹자의 배를 만지며 아침 식사를 했다. 나를 너무 귀찮게 하는 녀석이지만, 어쩐지 그 귀찮음마저 감수할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괜찮았다. 어머님의 밭을 구경갔다. 어머님의 집과 우리 숙소 가운데 하우스가 있는데, 그 안에는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가 있었고 밖에는 수 많은 꽃들과(양귀비, 수국, 무궁화 등) 무성한 풀들이 있었다. 나는 이 곳에 오고나서 영화 리틀포레스트는 정말 판타지 영화라는 것을 느꼈다. 이런 농작들과 밭을 꾸려나간다는건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길 옆에 핀 꽃들도 자기들이 스스로 피어난줄 알았는데 어머님께서 하나하나 다 심었다고 하셨다. 나무들을 심은지 10년, 수국은 2년, 양귀비는 1년, 복숭아는 2년. 그 말을 듣자마자 노력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구나 깨달았다. 그러다 자신도 심은적이 없는데 피어난 꽃들에 대해 얘기를 해주셨다. "저건 내가 심은적이 없는데, 씨앗이 바람을 타고 여기에 정착해서 스스로 저렇게 피어난 거예요." 인간의 힘 없이 스스로 새 둥지를 튼 저 꽃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어머님의 컬렉션을 구경하다 차 한 잔씩 내주셔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보약이었다. 시원해서 3초만에 원샷하고 두잔 더 마셨다. 차를 마시면서 어머님의 자식분들 얘기와 에어비앤비를 기획한 둘째 따님분 얘기도 듣고 숙소에 있던 방문자들이 쓰고간 방명록 얘기도 했다가, 강아지는 두 마리인데, 방명록에는 3마리가 등장해서 한 마리가 개명을 했나싶어 여쭤봤다. 그 곳에는 맹자, 방울이, 그리고 공자가 등장했다. 어머님은 잠시 옆에 엎드려 쉬고있던 맹자와 방울이를 보시더니 이내 입을 여셨다. "공자는 맹자의 형이었어. 근데 죽었어." 아뿔싸. 내가 말실수를 했다. 황급히 다른 주제로 대화를 넘기려고 하던 찰나, 뭐 잘 못 먹었나봐. 뭐를 먹고 나더니 갑자기 그렇게 되었다고, 담담하지만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하시면서 올 해 4월달에 왔던 게스트들 중 한 가족의 얘기를 하며 무지개 다리를 건넌 공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방울이와 판박이었다. 갈색 털, 도도한 눈, 하지만 더 듬직해보이는 체구. 딱 맹자보다 형같은 포스였다. 그런 공자를 안고있는 꼬마가 있었는데, 이 아이가 강아지 세마리에게 편지도 써서 보냈다며 그 편지 내용을 보여주셨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안녕, 방울아. 너가 엄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공자와 맹자가 너무 보고싶다. 7월달에 또 놀러갈게. 공자 맹자 모두 너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울거야. 맹자와 공자의 엄마가 된 거 다시 한 번 축하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한테는 차마 죽었다고 말 할 수 없으니 저 멀리 입양 보냈다고 말할거라고, 편지를 다 읽은 어머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가슴이 미어졌다. @dacoong 언니가 찍어준 필름 사진 (하트) 정상에 있는 숙소에서 아래까지 10분 정도 걷다 보면 '동강'이 나온다. 거대한 절벽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있는 강과 산의 모습이 장관이다. 스위스 피르스트 정상에서 보았던 웅장한 산과 마주했을 때의 기분을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다니. 숙소에서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만들고 읽을 책과 피크닉 매트, 그리고 각자 카메라 2대와 접이식 의자를 들고 고생길을 나섰다. 강원도는 춥다고 했는데 여기는 정말 후덥지근 했다. 습도까지 높아서 그런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나는 날씨였다.한참 내려가서 중간쯤 왔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방울이가 나타났다.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왔나 보다. 맹자라면 예상했을 텐데, 갑작스러운 방울이의 등장에 너무 놀랐는데 어제 영월 매거진에서 둘째 따님분인 사장님이 인터뷰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방울이가 강가까지 길을 안내해 줄 것이라고. 집으로 돌아 오자마자 난데없이 눈물이 터졌다. 현실에 복귀했다는 사실이 싫었다. 다시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게 괴로웠다. 정신 사나운 도시의 소음이 내 마음을 산만하게 흔들었다. 그 곳에 있을때는 몰랐는데, 서울로 돌아오고 나니 짧은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울이와 맹자가 보고 싶어졌다. copyright ⓒ yejinmoon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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