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자연의 자태 앞에 마주하고 있으면 첫사랑을 만난 것 같이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아침 내내 내렸던 눈은 지난날의 흔적들을 모두 덮어 버렸다. 다시 흰 백지가 되어버린 눈더미로 빠르게 달려갔다. 발아래로 푹, 푹하고 높게 쌓였던 눈들이 신발 밑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yejinmoon_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발자국 하나 없는 새하얀 흰 눈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바로 앞에 있는 새하얀 강과 빨려 들어갈 것 같만 같은 동굴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강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꽝꽝 얼어버려 들을 수 없었지만 산속에 있는 새들의 지저귐뿐만 절벽 아래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도시의 소음은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한차례 사진을 다 찍고 내 옆에 앉은 A는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웅장한 절벽에게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이런 삶을 계속 살아가고 싶어요." A는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보다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많더라도 불규칙했기에 항상 불안감을 안고 살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정말 재밌어서 버틸 수 있다고 말을 하곤 했다. 늘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하며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마음이지만 이 걱정들이 해결되면 물론 좋겠지만 전보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지금의 삶이 어쩐지 싫지만은 않다고 했다. 나는 A의 그 말에 "이렇게 계속 살게 해드릴게요!"라고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답했다. 근거 없이 내뱉은 말이지만, 그 말을 내뱉고 나서 내가 했던 말에 책임감이 생겼다. 혼자서 시작했던 일인데, 이제는 셋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둘이 내 곁에 있는 한끝까지 책임져야 할 사람이 되었다. 눈이 내린 탓인지 공기는 따뜻했다. 카메라를 움켜진 두 손도 시리지 않았다. 나는 목까지 차오른 말들을 애써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삼킨 채, 흰 눈으로 강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동강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다. copyright ⓒ othcomm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