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세계에서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지탱합니다. 땅속에서 물과 영양을 끌어올리고 서로 연결되며 살아갈 기반을 만들고 식물은 그 뿌리를 통해 주변 환경과 협력하고 생존의 전략을 조직하며 생태계 속에서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이를 보면 식물의 삶은 고립이 아니라 연결과 공존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나를 이루고 있는 사랑, 일, 관계, 어떤 순간들, 좋아하는 것 등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반들 역시 뿌리와 닮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를 붙들어 주고, 흔들릴 때마다 다시 서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뿌리의 방’은 저를 존재하게 도와준 대상들, 지금을 살게 한 것들, 즉 저의 뿌리에 대하여 오로지 아날로그 기법을 통해 완성한 사진들의 형태를 빌려 이야기를 전합니다.빛과 시간, 그리고 화학적 변화를 통과하며 만들어진 결과물은 같은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삼았음에도 서로 다른 흔적을 남겨진 그 모습은 우리가 각자의 뿌리를 따라 서로 다른 삶의 결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도 닮아 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삶은 완벽이 아니라 여러 번의 완결이 모여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완결은 또 다른 뿌리가 되어, 각자의 삶이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려 묻습니다.지금 당신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는 무엇인지.그리고 우리는 그 뿌리 위에서 어떤 이야기를 자라게 하고 있는지. <뿌리의 방>2026년 4월 3일 - 2026년 4월 12일장소 / 플롯룸 10년간의 기억이 엮인 사진 엽서집 만나러 가기전시에 큰 도움을 주신 분들. 플롯룸, 유어마인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어린 날의 나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나의 정체성을 소묘로 그린듯한 사진으로 표현해봤다. 보정 없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 인화한 데이터들을 필름지에 출력하고 고전 인화 기법을 활용해 종이 위에 남긴 후 몇 시간동안 손으로 만져가며 톤을 조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나 그럼에도 이런 긴 과정을 기쁘게 감수하면서까지 만져지는 현상으로 감각하고픈 순간들이 있다. 이를테면 책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벗이다.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이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 볼 수 있게 해주며 필요한 정보를 마음껏 알려 준다. 오늘 내 벗은 어떤 문장을 운명처럼 보여 줄까. 101p 15개의 보관함 안에는 건네받은 편지, 오래된 일기장, 수 많은 밤을 함께했던 책, 건네받은 마음을 소중하게 누른 압화된 꽃 등 사소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시간의 조각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물건들은 저를 자라게 한 관계와 순간, 그리고 마음의 흔적들이죠. 우리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 함께 보낸 시간, 지나온 계절이 층층이 쌓이며 한 사람의 현재를 이루어 냅니다. 이 보관함은 잊히지 않기 위해 남겨진 물건들이자, 앞으로도 계속 자라날 저의 기반을 보여주는 뿌리를 시각화한 아카이브 입니다. 지금의 당신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당신의 삶을 지탱해 온 ‘뿌리’는 어디에, 어떤 형태로 남아 있나요?만약 그것들을 한 상자에 담는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넣게 될까요. *서랍을 마음껏 열어 보세요. 1.이모부의 꿈을 유산처럼 물려받아 내 삶의 중심에 심었다. 새싹이 시들지 않도록 오랫동안 보살피는 것에 마음을 다했다. 마침내 꽃과 열매를 맺었고, 이제 그 결실을 주변에 나눠 주는 사람이 되었다.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고유한 삶의 궤적을 만들고 내면과 바깥의 풍경이 어긋나지 않게 하는 법을 배웠다.어떤 다정함은 삶의 경계를 넓혀 주고, 어떤 이야기는 삶을 지속할 원동력이 되어 준다. 수많은 마음에 빚을 진 채 살아온 시간. 이제부터 나답게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 무수한 찰나와 사람들에 대하여, 마음의 뷰파인더에 맺힌 빛나는 필름을 하나씩 꺼내어 보려 한다. 7p 2. 나는 자주 실패했다. 동업자와 했던 캐릭터 사업도, 초상화를 그려 주며 돈을 벌던 일도, 중국에서 들여온 물건을 팔던 소품 가게도, 모두 오래 버티지 못하거나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던 수 많은 시도들.그런데도 무언가를 만드는 건 끝없이 바뀌는 관심사, 바로바로 전달되는 사람들의 반응, 그 관심을 먹고 자란 성취감과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어? 이게 되네?” 이때부터 나의 일이 시작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과 약간의 무지함.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쏟아붓는 노력과 체력. 가장 중요한 건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연습.15p 브랜드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나의 빈틈을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 단기간에 브랜드가 많은 이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찾아온 행운은 나와 주변 사람을 지치게 했다. 결국 그 가시는 브랜드와 팀원을 찔렀다. 나와 달리 팀원들은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브랜드가 더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만의 방식으로 해소했지만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대상이 내가 되니 어찌할 바를 몰라 며칠째 나 자신에게 화가 나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팀원 중 한 명, 성욱님이 말을 건네왔다.“혹시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미안해요.”아차 싶었다. 그제야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성욱님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어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일하는 방식이 부족하면 포근하게 짚어 주었다. 불만이 있으면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말하되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었다. 의견을 제시할 때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브랜드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면 늘 그를 찾았다. 그는 제안했다. 잘못된 점을 딛고 일어서야만 성장할 수 있다고, 더 이상 혼자 앓지 말고 고통을 함께 나누자고. 내가 가지지 못한 다정함에 자주 샘이 나 불현듯 ‘이 브랜드가 성욱님의 주도로 운영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실제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듯한 상황이 찾아올때면 불안감과 동시에 심술이 났다. 그러다 어느 날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꾸역꾸역 삼켰던 말들을 토악질처럼 쏟아냈다 결국 그는 나와 Oth,를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찾아온 복을 제 발로 차 낼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조차 깨닫지 못했던 나의 실체를. 30p - 34p 목적과 의미가 사라졌다. 브랜드를 만들어 좋은 제품을 선보이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성공도 곁에 두었지만 다음 단계가 없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방향을 상실했을 때 밀려오는 무력감과 두려움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건지. 점점 시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도망을 택했다. 결국 모든것을 내팽개치고 떠나기로 했다. 떠나기 전 성욱님에게 빌려줬던 카메라를 돌려받아야 할 일이 생겼다. 이른 아침 터미널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성욱님은 흰색 쇼핑백을 들고 개찰구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원으로서 헤어진 이후 이런 식으로 다시 재회하게 되어 민망했다. 어색한 안부 인사를 감추고자 카메라를 받은 뒤 곧장 돌아서려고 했다. 정말 그러려고 했는데..(…)내게 묻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성욱님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조용히 배웅해 주었다. 풀 먹인 옷깃처럼 새햐앟고 빳빳하게 잘 펴진 마음씨가 구겨져 있던 나를 다독였다. 43p - 46p 카약을 타기 시작한 건 새로운 곳을 모험하기 위함이었는데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또 이렇게 내 앞길을 막는구나. 빠지지 않겠다 하면 빠지고, 빠지겠다 하면 빠지지 않는다던데. 넌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네 손에 쥐고 있는 것들 중 하나라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생각해 보니까 카약은 잘못하면 진짜 죽을 수도 있는데, 내가 하는 일들은 실수 / 실패를 하더라도 잠시간의 부끄러움, 자책감일 뿐. 죽진 않는 일이더라고. 그런 생각이 드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숨도 못 쉬게 괴롭히던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됐어. 나는 살아있고, 내 삶은 계속되니까. 하나의 실패가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는걸. 그리고 그건 나를 죽이지 못한다는 걸. 104p - 115p ‘처음’이란 단어는 마음을 쉽게 요동치게 한다. 그 단어 앞에 서면 머릿속은 금세 흐릿해지고 정작 중요한 내 시간의 무게와 손길의 깊이를 스스로 지워버린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정성과 시간, 손으로 빚은 것을 무작정 저렴하게 내놓는 일은 겸손이 아니라 나 자신을 흐릿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다음에는 조금 더 선명한 마음으로 내 중심에 서서 당당히 값을 매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를 지탱하는 단단한 자존감이라는 것을. 132p - 133p 이제껏 주어진 과제도, 업무도 혼자서 하는 것이 익숙했다. 내 인생은 나만이 책임질 수 있다는 신념도 강했다. 어쩌면 이것은 억지로 물에 가라앉으려고 했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나는 물 위에 뜬 것처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끌어안고 억지로 가라앉으려 했던 신념은 허물어졌다. 함께 하는 이들이 나를 깊은 곳에서도 자유롭게 띄어 주는 힘이 되었다. 이제는 도망가던 두 다리를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틀렸을지도 모르는 부분을 차분히 바라보고 싶다. 함께 걸어가는 길을 연습해 보려고 한다. 크고 작은 고난이 있을테지만 그저 스쳐 가는 바람일 뿐. 저마다 다른 꽃들이 모여 꽃다발을 이루고, 조화로운 정원을 만든다. 꽃들은 말없이 가르쳐 주었다. 혼자 빛나는 것보다 서로 기대어 더 넓게 환해지는 방법을. 계절은 늘 꽃으로부터 시작된다. 꽃을 다루는 사람은 한 발짝 먼저 계절을 마중 나간다. 계절의 기척을 손끝으로 감각한다. 꽃은 시간의 흐름을 숨기지 않는다. 피고, 머물고, 스러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꽃을 보면 ‘지금’이라는 짧은 순간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꽃에게 ‘나중’이란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지금 이 순간에 피어 있는 것을 놓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154p - 155p 꽃은 성별과 나이의 경계를 넘어 순수한 기쁨을 준다. 꽃을 선물하며 주고받는 무해한 언어야말로 내가 꽃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런데 꽃 수업을 받는 삼 년 동안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수업 후 버려지는 꽃들과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꽃이 시들면 버리는 일도 편치 않았다. 그래서 꽃의 시간을 붙잡는 작업, 압화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기다리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다음 화를 보기 위해,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을 기대하는 삶.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과 이야기에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깃들어 있다. 그 사소하고도 위대한 기다림 덕분에 나는 오늘도 이곳에 있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숨어든 이야기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더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건, 전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잠깐의 도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우회로였던 것일지도 모른다.건강한 몸으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그 세계를 환대하기 위해 수십 번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는다. Epiloue 나는 자주 포기하는 삶을 살아왔다. 참을성이 없고 성격이 급해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매번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두어 버렸다. 자주 멈추다 보면 나를 돌아볼 법도 한데 그러지도 않고 자존심을 핑계로 ‘이건 나와 맞지 않는 일이랴’라고 둘러대며 도망만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떠난 제주 여행에서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곶자왈을 마주했다. 숲 해설가는 곶자왈의 ‘곶’은 제주어로 ‘바위’를 가르킨다고 알려 주었다. 다시 말해 곶자왈은 식물 한 포기 없이 메마른 바위만 있어 척박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던 곳이 햇빛 한 줌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빽빽한 숲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죽음’덕분이었다. 날아온 씨앗이 뿌리를 내리려다 죽고, 싹이 되려다 죽고, 알 수 없는 숱한 죽음이 쌓여 마침내 다른 생명이 움틀 수 있는 자양분이 된 것이다. 끝내 자기 몫의 생을 움켜쥐는 방식을 마주하며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삶은 평탄할 때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딪히고 흔들리며, 때로는 멈추는 순간 속에서 비로소 다음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평탄해야만 좋은 삶이라고 믿어 온 내 마음이 그곳에서 천천히 무너졌다. 이제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마주 보고, 끝까지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어떤 미화도 없이 날것의 나를 직면하려고 애썼다. 매일 밤 일기를 쓰고 손을 거쳐 간 종이는 내면의 거울이 되어 나의 한계와 마음, 고민, 불안등을 만나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겨울은 씨앗에게 시련이 아니라 안전한 출발의 시간이라고 한다. 나의 겨울 안에서 하나씩 되짚고 얼어붙은 시간을 걷어 내면서 다시 찾아온 봄에 새싹을 틔었다.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을 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었지만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깨달았다. 부끄럽지 않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뜻임을.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자기 연민과 좁은 사고에 갇히는 일. 작고 단단한 나의 성에 갇혀 있지 않으려 배움과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며, 다양한 세상을 만나봐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평생 갚아야 할 마음을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 더 나은 미래를 그리며 기도하듯 글을 썼던 밤이 어찌나 고맙던지. 오늘 밤에 쓴 이 글이 훗날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상상을 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쓰러지고 넘어질 테지만 많은 이가 내 땅에 심어 줬던 용기라는 씨앗을 마주한다면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10일간의 전시가 끝났다. 처음 보는 분들이 나에게 배 굶지 말라며 빵을 사다 준다. 첫 방문에서는 빈손으로 왔지만 그다음 방문에선 두 손 가득히 나에게 무언가를 쥐여준다. 이제 이 브랜드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마음먹다가도 “다음에도 만났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고 나에게 말을 해주면 나는 또 어떻게 해서든 이 브랜드를 지켜내고 싶다가도 다음날 또 모든 걸 포기하게 되면 거짓말같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의 문장을 만나곤 했다. 중학생때부터 나를 처음 알았지만 지금은 성인이 되어 대학교나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과 각자의 터널을 지나 온 사람들이 전시장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나를 자꾸만 일으켜세운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내가 먼저 상대방을 안아 본 적이 없어 당연히 누군가를 안아주는 법도 모르지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떤 불순한 사심도, 욕심도 없이 그저 자신의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 아낌없이 자신이 품을 내어준다. 나는 자주 버벅거렸지만 그들이 내어준 한편의 방 안에 잠시나마 머물며 그들에게 사랑을 배웠다.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는 것을. 그러니까 나는 이들에게 사랑을 배우기 위해 이 전시를 열었고, 이 브랜드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