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는 그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보낸 응원들을 닳고 닳을 때까지 살펴본다. 그것은 유통기한 없는 유일한 사랑인것 마냥 마주할 때마다 불꽃같은 용기를 심어주기에. 사람들에게 받은 응원들은 가급적 어딘가에 기록하는 편이 좋은데, 글자 위에 시간이 쌓일수록 그 활자들은 힘을 가져 우리를 지켜주는 부적이 되기 때문이다.좋아하는 일을 어떻게하면 오래 지속할 수 있냐는 물음에 이제 내 대답은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나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주는 이들의 덕분이었다고 당당히 소리내어 말할 수 있다.지금의 내가 된 건, 그동안 자신이 지니고 있는 그 용기를 나에게도 나눠준 이들 덕분이니까. 그러므로 이 전시는 나를 좌절시키기보다 끝이 아닌 시작을 만들어 주려 하던 모든 이들에게 바치고 싶은 헌정사이다. 오티에이치콤마 전시<개화의 방> 2024년 10월 31일 - 2024년 11월 10일 장소대관 / 사진제공. 무서록 @museorok.seoul전시에 큰 도움을 주신 분들. 살구나무 숲 @salgoo.c 무서록 @museorok.seoul A. 개화의 방 손 끝의 감각으로 자연이 지니고 있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또 다른 형태로 기록하는 방식을 제안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압화. 그것은 소중한 이에게 받은 마음을 시들어 버리지 않게 해주고 매 순간 다른 감정을 선사하는 꽃의 찰나인 순간을 길게 연장해 주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압화는 필름 사진과 꽤 닮았습니다. 이 둘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기다림의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작업했지만 실패한 결과물을 마주했을 때의 실망감을 자본삼아 다시 시도한 후에야 맛본 성공의 짜릿함은 번거롭고 수고로운 이 작업을 끊을 수 없게 만들죠.꼭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됩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 보는걸로 해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난 작은 행복의 조각들을 음미하다보면 보이지 않던 기쁨들이 내 곁에 이리도 많은 형태로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을 때까지요. 행복은 소유가 아닌 경험의 향유로 가능해진다는 말처럼 이러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지칠 때마다 중요한 연료가 되어줄 수 있을거라 장담해요. 우리가 만든 이 도구가 성실한 산책자로 오늘도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당신에게 지칠줄 모르는 즐거움과 더불어 더 넓은 시각을 넓혀주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압화 도구 기획 의도. 1. 제품 활용에 대한 자유를 줄 것. 우리는 씨앗을 건네고 싹을 틔우는건 고객의 몫이지만 잘 자랄 수 있게 도움까지 함께 제공해야 함. 2. 자신의 행복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 필요한 물건들. (가능한 일상 범위내에서 다양한 경험 제공을 목적으로.) 3. 찰나의 것들이 아름답고 애특하다고 느끼는 이유 : 사라질 것이기에. 순식간이기에. 영속되지 않고 시들어 버리기에. 우리는 그들의 시간을 연장해주는 도구를 제작. 4. 사물에 본질을 부여하다.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 작은 행복의 조각들을 캐치하고 음미하면서 살다보면 내곁에 이리도 많은 기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도와주는 제품 / 도구. 5. 성취감과 호기심.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함. 6. 행복은 소유가 아닌 경험의 향유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7. 지친 몸,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나만의 안식처를 만들 것. 그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이러한 경험이 쌓이고 쌓일수록 앞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연료가 되어줄 것이라 장담. 세상에는 쓸모없는 경험이 없으니까. 작년에는 응집해왔던 것들을 분해하고 재결합하는 시간에 중점을 뒀다. 대단히 해낸 일도 없고 그렇다고 또 대단한 성과를 이룬것 또한 없지만 그럼에도 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시기를 보냈다.지극히 일상적인 것도 낯설게 바라보는 법을 터득하면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하루하루 여행을 하는 것처럼 살 수 있는 법도 알았다.나는 한 그루의 나무에도 세상의 욕심이 사라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도현이와 매일 산책을 나가 세상의 모든 기쁨들을 만나러 다녔다. 걷기를 통해 자주 멈추고 깊이 호흡하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방법을 연습하며 나를 감싼 세상을 맘껏 음미한다. 덕분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만 된다고 생각했던 도피는 사실 거리와 장소 구분 없이 스스로 고립을 통하여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딘가에 속해있으려 부단히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그저 온몸에 힘을 뺀 채 부유하기만 하면 되는 곳. 나를 둘러싼 우주를 독대하고 어지럽게 공존하던 내면의 목소리를 곱씹어 소화시킬 수 있는 “나의 동굴”의 존재도 알아차렸다. 그곳은 집일 수도 있고 늘 걷는 산책길이 될 수 있으며 단골 카페나 도서관 등 다양한 곳에 서식하고 있었다. 이곳은 나가 방황할 때마다 길을 안내해 줄 등대이자, 나의 존재를 선명히 증명해 주며 앞으로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지탱해 줄 버팀목이 되었다. (2023.12. 노트) 매번 탐험에 나선다.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이지만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날마다 새로운 길이 펼쳐진다. 나는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우리의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일들이 즐겁다. 어느 기억은 시들지 않게, 빛이 바래지 않는 곳에 보관 후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을 때마다 꺼내고픈 순간들이 있다. 그 방법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도구를 만들었고, 다양한 물성을 통해 새로운 방식을 탐구하는데 게을리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안될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럼에도 해야 한다면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아침마다 주문처럼 읊조린다. 어렵게 다시 마주 잡은 손을 나의 연약한 힘에 놓치지 않도록 오늘도 굳세게 마음을 다잡는다. A방에 붙여진 메모 중 일부 (1)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브랜드. "남들도 다 이렇게 하는데요."가 아닌 이런 점이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나부터, 내가 먼저 바꿔보자 라는 마인드셋을 가져야 한다. (2) 나의 힘의 원천은 이제 나에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창조적 사유가 작동될 수 있는 원천은 이제 나를 넘어 더 많은 이들과의 연결이다. (3) 누구하나 소외시키지 않는 브랜드, 이야기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특정이들만 소유하게 된다면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해서 모두가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 '도구'를 만들어 그 과정이 주는 성취감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주자, 하고 나온 것이 압화도구와 채집의 방 프로그램 아닌가. 잊지 말자. 우리는 제품이 아닌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4) 나를 위해 만들었던 도구가 분화되어 더 많은 이들에게 닿게 된다면. 고여있던 호수를 넘어 흐르는 강을 지나 바다로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그러니 점화된 나의 불이 당신에게도 붙기를. 그렇게 우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기를. (5) 우리의 이야기를 통로삼아 자신만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관찰하고 사색하고 이내 움직이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데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Oth, 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저마다 탐험에 나설것을 청하는 초대장을 보내는 브랜드여야 한다. -> 여러차례 질문을 던지는 제품, 브랜드.-> 새롭게 연결하고 더 멀리 확장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갈고리'가 있어야 한다. 고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우리의 '다리'가 되어야 함. (6) 압화, 위빙, 바느질, 사진 찍는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거기서 나는 또 어떻게 내 색깔로 2차 창작을 할 수 있는가.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나만의 고유의 언어로 해야 한다. 축하합니다. 지겹게 실패해 보면서 또 다른 배움, 그로인한 새로운 성취감, 나만의 방식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당신은 이 실패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요? - 제작년에 시작한 꽃 수업을 통해 2년간 재료들을 차곡차곡 모아 호기롭게 압화 포스터 10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지만 포부와 다르게 현실은 한 장의 포스터만 제외한 모두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던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실패한 이유는 이 곳에 전부 담지 못할만큼 여러 가지입니다. 최종 작업 중 공기 차단을 완벽하게 하지 않아 잎들이 찌그러지거나, 맨 처음 단계에서 꽃에 남아있던 수분을 제거하지 않아 꽃을 포갠 지류에 곰팡이가 퍼져 허탕을 치기도 했습니다.절화인 상태에서도 멋진 자태를 뽐내던 꽃들이 압화를 하면 더 근사하게 재탄생하는 경우에는 온 동네에 자랑하고 싶을 만큼 기뻐 매일 마주하고 싶은 욕심에 노출된 곳에 보관하면 얼마 가지 못하고 변색이 되기도 해, 기뻤던 감정이 순식간에 씁쓸함으로 변하고 마찬가지로 미련 한 줌과 함께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도 했죠. (대부분의 계절 꽃들은 날씨를 귀신같이 타기 때문에 기껏 공들여 작업했는데 망하기라도 한다면 내년 시즌을 기약해야 하는 일도 있어 아쉬움은 배가 되기도 합니다.)그럼에도 저는 쓰라린 실망을 주면서도 매번 달콤한 새로운 배움을 제공해 주는 이 실패가 반갑습니다. 이번 압화에서는 또 어떤 실패들을 만나게 될까. 지겹게 실패해보면서 그 속에서 얻는 또 다른 배움들을 마주할 생각에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꽃은 자신을 조심스럽고 어여쁘게 여기는 것은 물론 조급해하지 않는 이들에게만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아주 짧은 찰나에만 보여주고 다시 제 모습을 감쳐버립니다. 그 순간을 어떻게 포착하고 어떤 방식으로 간직할 것인가는 역시 우리의 몫이지요. -> 북 큐레이션. 갈매기의 꿈 - 리처드 바크새벽과 음악 - 이제니 B. 개화의 방 (체험존)with. 살구나무 숲 당신과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가을 들판의 한 장면을 옮겨 왔습니다. 오랜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으면, 그 장소에 있는 들꽃을 채집하는데요. 지금 이 순간이 마음에 들었다면 옆에 마련되어 있는 가위를 통해 한 송이씩 잘라가 오늘의 날씨와 이 공간의 공기, 지금 느끼는 감정을 두꺼운 책 사이에 구겨지지 않게끔 반듯이 넣어 상기하고 싶을 때마다 꺼내 읽어 보도록 해요. *살구나무숲 소개난 춤을 추지 못하지만 꽃을 만질 때는 내 두 손이 꽃 안에서 자유롭게 춤을 춘다. 그 순간에 몰입한다는 건 춤을 추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살구 선생님의 가르침은 수강생들에게 ‘권한'을 부여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압화 도구를 만들게 된 것도.자연의 재료를 만나게 된 것도.이 작업에 이토록 열중하게 된 것도. -> 북 큐레이션. 시와 산책 - 한정원 젠 난 네가 두렵지 않아. 널 마주했을 때 온 힘을 다해 피워냈는데 나로 인해 허무하게 시들까봐 함부로 손을 움직이지 못해 식은땀이 나지도 않고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너의 쓸모를 져버릴까 초조하지도 않아. 너를 어떻게 하면 더 빛나게 할지, 마침내 방법을 찾았거든. 머릿속으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경험한 뒤 너를 만나러 가면 어느새 너는 내 손안에서 춤을 출 테니까.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난 너희들은 각자 지니고 있는 향기가 자기만의 언어인 듯 노래를 하면 나는 너희의 목소리를 코로 듣는 일이 즐겁다. 큰 송이들은 발향이 강한 만큼 목소리도 크고, 작은 송이들은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뭉쳐 목소리를 합치니 존재감이 뒤처지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만든 무대 위에서 오늘도 기쁘게 합창한다.함께 한 시간이 쌓인 만큼 어느새 자연스레 내 마음에 움튼 그들의 목소리를 나침반 삼아 손을 움직이다 보면 머릿속으로 그렸던 스케치와 일치한 현상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 이루어진 것 마냥 기쁘다. 2년 전 잔뜩 경직되고 웅크리던 모습은 어디 가고, 요즘에는 꽃들이 내 손안에서 자유롭게 춤 춘다. (2024) C. 씨앗의 방 압화라는 작업은 그들이 가장 빛날 때, 그 순간에 온전히 머물 수 있도록 시간을 멈추어 보존하는 일과 같습니다. 싱싱한 기억들이 시들지 않고 온전히 보관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이번에는 그 기억들에게 어울리는 집들을 지어 주고자 합니다.다양한 활용 방법을 통해 저마다의 방식을 찾아가는 지도의 초안이 되기를 바라며 그 지도의 완성은 온전히 당신의 몫입니다. 1. 꾸준함에 대하여 (2022) 버려진 천들, 배 위에 쓰지 않는 목재들, 더 이상 읽지 않는 책들 위에 기름을 발라 그림을 그렸던 과거의 화가들은 자신의 불행하고 가난한 삶을 끝없이 저항하고 싸우는 천사들이었다. 안되는 이유는 우주의 별 보다 많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해야 한다면. 많은 사람이 가로막고 욕하더라도 내 사명을 이어나가야 빛을 보게 돼있다.그것이 설령 내 죽음 뒤라도. 그 이후 몇 백 년이 흐른다 해도 나의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길 바란다면. 귀인을 만나길 간절히 원한다면. 잡고 있는 붓을, 연필을, 카메라를, 달리고 있는 두 다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 북 큐레이션. 고요한 읽기 - 이승우 2. 산책 (2024)*아이들과 산책길에서 만난 자연의 조각들로만 활용해 조합한 압화 포스터 입니다. (1) 도현이에게 A같은 사랑이 있다면 밍고는 B같은 사랑이, 버들이에게는 C같은 서로 다른 형태의 사랑이 있다. 무해한 존재들에 둘러싸여 있는 나날들. 아이들과 함께 집 밖을 나가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이어진 듯한 마법같은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긴다. 어떤 역경이 닥쳐도 굴복하지 않고 바다같은 너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오늘도 배우며 느린 보폭으로 성급하지 않게 성장한다. 그러니까 요즘 나를 움직이게 하는건 돈도, 명예도 아닌 사랑이다. (2) 이제 5개월이 된 버들이는 더 긴 세월을 살아온 나보다 훨씬 괜찮은 존재다. 도현이 형한테 물과 밥을 먼저 양보한다든지, 자신을 싫어하는 존재까지도 넓게 포용할 줄 알며, 산책을 하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사랑을 민들레 씨처럼 널리 흩뿌린다. 나에게 선생님이 또 하나 늘었다. 아무래도 버들이가 가르치는 과목은 아무 대가 없는 사랑을 주는 법일 것이다. (3) 지금까지 물을 무서워하던 버들이가 오늘 마침내 자기 의지로 수영을 했다. 낯선 감촉에 몇 시간을 어색해하며 물 밖으로 여러 번 뛰쳐나가던 아이가 수영장 폐장 30분을 남겨두고 구명조끼까지 벗어던진 채 느리지만 유연하게 물속에서 헤엄을 치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 생명의 성장과정을 지켜본다는 건 이렇게 아무런 대가 없이 순수하게 응원하며 그 과정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숭고한 경험이었다. 따가운 빛을 부서뜨리며, 아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눈부신 빛을 몰고 오며 나에게도 나눠주기 위해 다가오는 존재를 바라본다.아이들이 몰고 온 사랑에 누워 오늘도 자유롭게 부유한다. -> 북 큐레이션. 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 최승자 3. 핀란드의 겨울 (2023) 떠나기전 집에서 나에게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 사람들의 편지들 중 몇 장을 챙기고는 낯선 땅에 도착해서도 내 분신 같은 가방 안에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편지들을 넣어 다녔다. 나에게 보내준 마음들이 부적 같아서. 비록 종이지만 내 몸에 지니고 있으면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서.허벅지까지 쌓인 눈더미를 헤쳐나가는 건 물속에서 걷는 것보다 더한 체력이 필요했지만, 이 너머로 보고 싶은 풍경이 있었기에 자꾸만 더 깊은 곳으로 푹 꺼지려 하는 무게를 견뎌내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나를 응원해 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랐다. 어서 저 너머의 풍경을 나에게 씨앗같은 용기를 심어준 모든 이들에게 전해줘야지라는 마음으로. - 1. 사람 한 명 보기 힘든 이곳은 지독히도 고요하다. 고요한 적막 속에 존재하는 소리라곤 오로지 내 옷에 부딪히는 눈 소리와 내 숨소리만이 나에게 말을 건네온다. 왜 이곳이었을까. 무엇을 위해 그 긴 시간을 버텨가며 고립된 세상에 스스로 발을 들인 거였더라.그간의 행적들을 돌이켜보니 그동안 한참이나 잊고 지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몇 년 전 공장 알바를 하다가 우연히 붉은 해가 점차 떠오르는 흰 설산에 시베리안 허스키들이 자기 앞마당처럼 너무나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영상을 보고 가슴이 요동쳤던 적이 있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셔틀버스 안에서 모두가 잠든 틈에 핸드폰 밝기를 최대한 낮추고 무감각했던 일상을 그 짧은 순간에 사무치게 떨리게 했던 영상을 반복 재생하며 그저 막연한 상상을 하면서 이런 다짐을 했었더란다.나도 살아서, 저곳에 가야지.그곳의 공기를 마시고, 저 풍경을 내 눈에 직접 담아야지. 2. 핀란드 최북단에 위치한, 이름마저 차갑게 느껴지는 사리셀카. 관광의 도시같지만 관광객인 우리가 이렇게까지 돈을 쓰지 않은 것도 신기하다. (환전을 800유로 정도 해갔는데 550-600유로를 남겨왔다. 외식은 도시에서 한 번만 하고 나머지 11일치 삼시세끼는 장을 봐서 집에서 요리를 한 덕분이지만.)(1. 오로라가 보고 싶어 찾았던 공간을 예시로 들자면, 구글에 등록된 오로라 헌팅 스팟에 가면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무료로 마련되어 있다. (장작도 준비되어 있어 방문객들이 돌아가며 불을 지피니 늘 따뜻하고 청결하게 유지가 되고 있었다. (*날씨운만 좋다면 도심 속에서 조금 벗어난 어두운 숲에서도 잘 보이기에 오로라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다.) 3. 숙소에 썰매와 스키가 있다면 따로 대여비를 내지 않아도 스키장을 이용할 수 있다. 리프트권은 유로지만 정상 전망대까지 차로 운전해서 간 다음 내려오는건 무료이기에 썰매나 스키를 타고 자유롭게 이용하면 된다.*단 리프트 외에도 다시 전망대로 올라가기 위한 셔틀버스는 올데이 이용권이 5유로다. 단돈 7,000천원으로 스키와 썰매를 질릴 때까지 즐길 수 있다는 것.(세상에서 제일 긴 썰매장이라 내려가는데 10분 정도 소요되어 2번만 타도 지친다.)저예산으로 많은 것을 누리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자연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걸 함께 누리자." 라고 도시 전체가 몸소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실제로 핀란드에는 'jokamiehen oikeudet (모든 이의 권리')라는 법이 존재한다고 한다. 핀란드 국적을 가진 사람 외에도 이 나라를 방문한 모두에게 이 땅의 자연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개개인의 권리를 법으로 명시해놓았다는 점에서 핀란드인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2023) 4. 씨앗같은 용기 (2024)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는 그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보낸 응원들을 닳고 닳을 때까지 살펴본다. 그것은 유통기한 없는 유일한 사랑인것 마냥 마주할 때마다 불꽃같은 용기를 심어준다. 사람들에게 받은 응원들은 가급적 어딘가에 기록하는 편이 좋은데, 글자 위에 시간이 쌓일수록 그 활자들은 힘을 가져 우리를 지켜주는 부적이 되기 때문이다.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냐는 질문에 이제 내 대답은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나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주는 이들의 덕분이었다고 당당히 소리내어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내가 된 건, 7년동안 자신이 지니고 있는 그 용기를 나에게도 나눠준 이들 덕분이니까. 그러하므로 이 액자는 나를 좌절시키기보다 끝이 아닌 시작을 만들어 주려 하던 모든 이들에게 바치고 싶은 헌정사이다. -> 북 큐레이션.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어느 날 문득 앞으로 제가 살아야 되는 이유가 궁금해져 저 자신에게 인터뷰하듯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단순한 물음으로 가볍게 시작했지만 몇 날을 거쳐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글 덕분에 현재 제가 뭘 사랑하고 있고 미래에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하여 일면을 볼 수 있었어요.사생활과 관련되어 있거나 현실적인 목표는 미리 배제하고 버킷리스트 처럼 작성한 글을 짧게 공유하면서, 이 주제로 나 자신에게 인터뷰 하듯 질문을 던져 저마다 잊고 있던 감정들을 만나보셨으면 합니다.나는 살아야 합니다. 왜냐면요. 가족과 함께 하는 한 끼의 식사가 매번 기쁘기 때문이고요. 도현이와 버들이랑 매일 같은 듯 다른 산책길을 나서면서 우리의 지도를 만들어야 하고. 매일 부지런하게 그루밍을 한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보드라운 밍고의 털을 아낌없이 느껴야 하며. 요즘 온 마음을 다해 흠모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들춰봐야 하면서.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활동이 끝날 때까지 함께 달려야 합니다. 배낭 하나만 어깨에 맨 뒤 아직 제가 모르는 세상들도 마주하러 가야되고. 남미에 있는 협곡 급류를 오로지 카약을 통해 내려 가는 무모한 도전도 해내고 싶고. 바다에서 카약을 타다 수영하는 돌고래도 만나야 하고. 먼 발치 떨어져 남극에 살고 있는 펭귄과 플라밍고 무리들은 꼭 만나러 남미에도 가야 합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동물들의 모습을 평면으로 되어 있는 핸드폰 화면이 아닌 생동하게 살아 움직이는 두 눈동자에 담고 싶으며. 내 반려자와 함께 서로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줘야 하고요. 우리 아이들에게 끝이 없는 것처럼 계속해서 사랑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첫 번째 챕터인 Oth, 가 쉼표이니 두 번째 챕터는 마침표로 완결도 내야 하고. 제 손에서 탄생되는 작업물들이 어디까지 뻗어 나가는지 궁금하고. 제 나무가 과연 숲을 이룰 수 있는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신은요? 5. 서로 다른 생김새의 꽃들 (2024) 엄마는 늘 새장의 문을 열어 둔 것처럼 우리를 풀어놨다. 어디로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나갈 수 있는 지구력을 기를 수 있도록. 그러다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안전지대도 늘 묵묵히 제자리에서 지키고 있었다. 공기처럼 형체도 없다고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형태가 사실은 여태껏 중력을 갖고 내 곁을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김새, 다른 목소리, 저마다의 표현방식이 있는 것인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얼마나 많은 세월을 오해라는 이름으로 낭비했었나. -> 북 큐레이션. 물을 수놓다 - 데라치 하루나 6. 제 2의 고향, 영월. (2024) D. 대지(작업자)의 방 이제까지 세상에 공개된 작업물들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는지에 대한 모든 작업 과정이 담긴 Oth,의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만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정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1) 목공을 배우게 된 이유는 제품을 제작하는 제작자가 기초도 제대로 아는 것 없이 무턱대고 다른 업체에 맡기는 건 너무 책임감이 없지 않나,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평생 함께 할 직업이 됐지만.)목공.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매 순간 증명해 내는 일. 감각이 좋아도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이론과 실기를 알지 못하면 젬병인 것.목공을 시작한지 오늘로 900일. 나만 알아서 눈을 감는게 있고 내가 알기 때문에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후자가 되어야 한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이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조바심 나지 않고 수 많은 실패가 쌓일수록 더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다. (2) 진호와 나는 2년 8개월전 목공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이 시작했지만 지금의 나는 취미의 수준으로, 그는 시작부터 남다른 결의를 다지고 본격적으로 임했다. 그러니까 똑같은 시간을 들여 같은 커리큘럼의 과정을 배웠지만 매 회차가 진행될 수록 차이나는 질문의 수준과 빈도가 잦아들수록 나와 그 사이에 벌어진 격차에 대해서는 한 때 자격지심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참 부질 없는 감정이었다.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들 때 나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들로 채워야 했는데 말이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다음주 수업 시간이 될 때까지 목공을 아예 놓고 있더라면 진호는 빈 공백에도 연구하는 시간으로 채웠고 새로운 질문을 준비해 갔다. 질문 수준부터 나와 달리 심도가 있었고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면서 이전에 배우지 못했던 내용들을 제 스스로 포함시키는 반면 나는 무궁무진한 자유 형태를 만들 수 있음에도 이전 방식만 고수하며 도형 놀이에서 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 5시간의 수업과 지금의 수준에도 만족했지만 그는 수업 시간 외에도 알아가는 배움과 퀘스트를 깨듯 난관을 하나씩 격파해 나가는 과정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았다. 일련의 과정보다 결과주의에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나는 우리 둘의 좁혀지지 않는 격차에 대해서 주관적인 생각을 빼놓고 다시 생각해봤다. 그렇게해서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그것은 어떠한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었던 것. 마음을 굳게 다짐한 사람들의 오늘이 켜켜이 쌓인 다음날은 반짝반짝 빛나는 빛들이 숨겨지지 않고 그 사람의 눈동자를 빛춘다. 그것은 너무나도 생동해서 옆에 있는 나까지 끌어 당기는 힘을 지녔다. (3) 하고싶은게 많을수록 기대되는 노년. 그러기 위해서는 항시 깨어있는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취향을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것이 아닌 퀄리티, 감도 높은 안목과 아이덴티티가 느껴지는 취향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 뜨개질을 잘 한다고 모두가 작가가 되는건 아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없다면 내가 아닌 타인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때 이해 x. 촌스럽다 생각할 수 있기에. 그러므로 어떻게 나의 색깔을 구축할 것이냐.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꾸준히 쌓아 올릴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오래 지속하고 싶다면 퀄리티를 점점 더 올려야 한다." (2024.7.15. 목공 선생님과의 대화 중 일부 발췌) D방에 붙여진 메모 중 일부 1. 완벽주의보다 완결주의가 낫다. 2. 지금 나에게 필요한건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세상에 거리낌 없이 내놓을 용기. 받아줄 관객이 없어도 새로운 관문을 깼다는 성취감과 무구한 마음을 잃지 않고 창작한 것들을 부담없이 세상에 내놓은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 3. 회피도 습관이 된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선 가능한 맞딱드려 스스로 굳은살을 만들어내어 고통에 둔감해지는 방법이 제일 좋다.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종종 쉬는 시간도 주고. 4. 과거에 적었던 기록에서 명쾌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니 기록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 것. 막 적어낸 파편같은 조각들도 언젠간 쓰임을 찾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되있다. 5. 도전의 나비효과 6. 노홍철은 인생을 걸고 악을 쓰며 일을 하지 않는다. (물론 그만의 고충이 있겠지만) 늘 진심으로, 즐기면서 시도하고 임하니 하는 일마다 타율이 좋다. 그렇다면 그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금전적인 이야기는 제외하고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보기.)->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을 관찰해 본 일지.(1) 나에게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 아는척 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이 궁금하지도 않는 지식을 내뿜지 말 것. 조언하지 말 것,(2) 욕심이 없을 것. 붙잡아 두지 말고 흘려보낼 것.(3) 즐길 것. 이 악물고 인생을 걸지 말 것. 그저 즐길 것.(4) 실패, 패배했을 때 깔끔하게 인정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승리를 축하해 줄 수 있는 자세. 자신의 승리보다 게임을 / 경쟁하는 순간 자체를 즐길 것. 비록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재밌게 플레이하는 것만으로 OK. 패배해도 의연한 자세. 자신의 실력도 인정하고 모든 공을 함께 한 동료들에게 돌리는 모습. 압화 도구를 기획하면서 참고한 서적들에밀리 디킨슨 시 전집에밀리 디킨슨, 시인의 정원자연 수업 - 페터 볼레벤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 트리스탄 굴리이끼와 함께 - 로빈 월 키리머이토록 지적인 산책 - 알렉산드라 호르비츠산책의 언어 - 우숙영식물과 나 / 식물에 관한 오해 - 이소영야생의 위로 - 에마 미첼미움받는 식물들 - 존 카디너 Oth,가 출판한 사진집들동행 (2021)뷰파인더 (2023)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도움이 된 서적들가장의 근심 - 문광훈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 - 장석주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창조적 행위 - 릭 루빈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사진에 관하여 - 수잔손택어떤 동사의 멸종 - 한승태가치 있는 삶 - 마리 루티조용한 삶의 정물화 - 문광훈멀고도 가까운 - 리베카 솔닛 (1) 이해하기 어렵다며 책장 가장 구석에 처박아두고 외면하던 책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눈에 밟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치 과일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후숙이 될 때까지 기다렸던 것처럼 때가 찾아오자 친절한 책이 먼저 저를 부른 것이지요. 내가 생각나거든, 한 번 다시 만나보자고. 보채지 않고 다정하게 건네오는 책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책도 다 만나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제가 아무리 무관심하게 굴더라도 나를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벗이 있다면 그건 책이겠지요. 이 영겁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끔 재밌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다른 이들의 삶을 살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필요한 정보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살이 뼈가 될 정도로 모든 걸 내주는 벗이 있다는 사실이 천군 만군을 얻은 듯 든든합니다. 그러니, 오늘 밤에도 나는 가야 합니다. 오늘도 내 벗이 어떤 운명적인 문장을 연결해 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2) 여행은 도피였다. 이제 나는 도망치지 않겠다. 대신 찾으러 가겠다. <개화의 방> 전시 회고록 인터뷰 보러가기 우리 모두의 예상을 빗나갈만큼 반응이 좋아 최초로 휴무없이 10일동안 진행한 전시가 내일이면 막을 내린다. 매일 의자에 한 번 앉지 못하고 7시간내내 서서 응대로 해도 전혀 지치지가 않는 이유는 찾아와주는 이들이 자신이 가지고있는 에너지와 용기를 나에게도 나눠주기 때문에 항시 h.p가 계속 max로 차있는 느낌이다. 오프라인의 힘은 이렇게나 대단하다. 생동하게 살아 숨쉬는 풍경 앞에서 내 마음은 한없이 경건해진다. 매일 아침마다 깨끗한 마음으로 1시간 일찍 전시장에 나가 오늘의 방문객분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나의 일이기에. 귀한 발걸음해준 모든 이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책임감이 즐거움으로도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이번 전시를 통해 깨달았다. 4년동안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 것만 같다. 이곳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태어나고 모든 순간들을 돌파해낸 것만 같다. 10대부터 70대까지 성별, 연령 불문하고 나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며 귀에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서 꽃망울이 톡톡 피어난다. 눈가에 촉촉이 고인 눈물들은 이 브랜드를 지켜내고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며 다정함을 잃지 말자는 우리의 이야기를 멈추지 말아야겠다 굳세게 다짐하게 만들고, 우리가 건넨 도구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재정비하고 나아가는 발걸음을 마주할 때마다 너무나도 애틋해서 숨울 죽이게 된다. 양갈래 길에 선 사람들, 막다른 길 앞에서 스스로 문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자신의 삶에 운전대를 쟁취한 이들에게 나는 어떤 표본이 되었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이 순간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닿아 어떤 씨앗이 심어졌을까.선한 마음은 선한 마음을 낳는다고 믿는다. 나를 안아주던 그 따뜻한 품같은 활자들에 깃든 체온은 내 마음속 아주 깊은 뿌리에서부터 자양분이 되어 어느덧 열매로 달리더니 새를 닮은 이들이 나의 나무에 날아와 영양분을 쪼아먹고, 떨어진 열매와 씨앗른 다시 땅으로 돌아가 또 다른 삶을 잉태한다.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는 걸.<개화의 방>이 무사히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받은 많은 인연들이 흩어져 있다가 한 곳으로 응집된다. 조각처럼 쪼개져있던 마음들을 하나로 합쳐 이제 쉽게, 아니 어떤 풍파를 겪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나의 성, 가장 멋진 방에 보관한다.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나와 그들의 활자들이 우리의 삶을 계승해 또 다른 이들을 살게해 줄 때까지.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올라탄 이 배를, 그들이 쥐어준, 두손으로 꽉 마주잡은 이 노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2024.11.10. 전시를 마치며. 사진 제공. 무서록